Conical Behavior – Mute

Presented at Trunk Gallery Window Project, Seoul, 2014

Video and slide projection, scroll print (collaboration with Heesun Seo)

 


Photography by Hong Cheolki

 

원뿔과 행동

김실비 작가의 <원뿔 행동>은 2013년 독일 함부르크의 WCW 갤러리에서 열린 More or Less전 시에 프로토타입 형태로 공개했던 작품으로, 이후 한국에서는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이 열린 오뉴월 갤러리에서 영상과 슬라이드 설치로 소개되었다. 김실비 작가를 알거나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언뜻 작가가 그동안 주로 집중해온 영상이라는 형식과는 달리 물질적이고 사뭇 고전적인 분위기가 엿보이는 이 설치 작업이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물론 영상 언어의 시간성에 대한 탐구라는 차원으로 범주를 넓혀서 살펴보면 이 작품은 그동안 이어져 온 작가적 여정의 연장 선상에서 제작된 일종의 ‘소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개별적인 작품들을 나열해서 생각해 보면 이 작품은 단순한 ‘소품’ 보다는 작가의 행보 전체를 언급하는 일종의 레퍼런스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동시에 ‘과거-기억/기록-(비물질적)영상’과 ‘현재-연속/연출-(물질적)존재’라는 두 가지 다른 계열을 끊임없이 넘나드는 김실비의 영상 작품들을 마치 하나의 시리즈처럼 이어주는 접착제가 되기도 한다.

김실비가 그동안 영상에서 쌓고, 꿰매고, 배치한 이미지들은 작가 스스로가 부유하고, 마주치고,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지배적 문화와 코드들에 대한 분석이고 정리다. 이 코드들은 동아시아 아이돌 스타의 팬덤을 이끄는 낭만을 그린 <소년 애인>(2009), 크루즈 여객선에서 여가를 즐기는 중산층이 쫓는 행복에 대한 <아이다>(2012), 클래식 오페라와 유튜브에 유통되는 대중 문화 속에서 중첩되는 인간 군상의 희노애락을 노래한 <금지곡들: 여자란 다 그래>(2013), 내가 잘 모르는 특정 장소를 경험하면서 생겨나는 실재와 상상 사이의 간극에 대한 솔직한 고백 <M을 위한 노래>(2013)와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의 문화 테두리에 속해 있는 요소들이다. 여기다가, 김실비의 작업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과거와의 연결, 이를 테면, <소년 애인>에 등장하는 고대 로마의 소년상이나 <금지곡들: 여자란 다 그래>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등장인물과 장면을 빌려 오는 설정 등은 작가 김실비의 표현을 빌어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 밀도 높은 특권적 일상”을 살아가는 예술가가 특정 주제를 내면화 시키기 위한 모범적인 선택이자 동시에 그 주제를 ‘미술적 고민’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 그러니까 김실비 작업의 가장 큰 미덕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명확하게 분석하고, 정리하여, 결국에 하나의 도상으로 치환 시키겠다는 미술 작가의 기본적인 욕망이자 의무를 성실하고 솔직하게 이행한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원뿔 행동>은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주제들을 관통하는 김실비가 만들어가는 ‘예술 언어’에 닿아 있다. 김실비 작업들은 각기 다른 크기의 원뿔 안에서 바닥과 꼭지점 사이를 끊임없이 운동하며 현재의 감각에 상응하는 적절한 수위를 찾아 행동한다. 이 행동은 과거와 현재, 기억과 연속, 기록과 연출 등을 끊임없이 넘나들며 설득력 있는 자각을 이룩해나가는 과정이며, 이 과정은 작품으로 드러나고, 작품은 과정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트렁크 갤러리의 윈도우 앞에 선 우리가 김실비 라는 작가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역시 우리 안의 기억과 정보를 끄집어 내서 현재로 수축하는 정신적 운동이 필요하다.

트렁크 갤러리의 윈도우 작은 공간 안에서 다시 재현된 <원뿔 행동>은 어떤 과학자의 ‘엉터리 실험실’을 표방한다. 돋보기로 투사하는 슬라이드의 원뿔 이미지는 초점이 맞지 않고, 모니터의 영상은 윈도우 전면에 들이치는 햇빛 때문에 보이지 않고, 구겨진 걸개에 프린트 된 글자는 완결된 문장이 아닌 분열된 단어로만 전달된다. 이번에는 특별히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서희선이 협업을 하여, 이 정신적 흐름의 프로세스에 즐거운 운동성을 더해주었다. 음향 출력이 불가능한 윈도우라는 공간적 조건에 대한 반응으로서, 영상 작품의 대본(음향)은 걸개 인쇄물로 번역된 시각적인 요소로 전달된다.

“구름처럼 나타나서 차츰 응축되는… 잠재적 상태로부터 현실적 상태로… 그리고 기억은… 윤곽들이 그려지고… 모방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기억으로 식별하지… 모른다”

- 권 진(독립큐레이터)

 

copyright sylbee kim. all rights reserved